조성대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사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자 우리 정부는 수입을 일부 제한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 대표단이 우리 정부를 방문해 이 수입제한 조치가 부당하다며 철회를 요청했다.

#사례. 2015년부터 시행되는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에 대해 외국 기업들이 반발하며 WTO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이상은 최근에 보도된 내용들이다.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한 외국 기업의 저항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지만 역으로 우리 기업들 역시 외국의 수입제한 조치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수입장벽에 대해 살펴보자.

수입 시 부과되는 세금을 ‘관세’라고 한다. 이 관세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민감한 분야는 높은 관세율로 보호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농수축산물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과거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관세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관세율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관세는 수입장벽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이 같이 관세의 산업 보호 기능이 줄어들자 관세를 대신할 수입장벽의 중요이 커지게 됐는데 이를 비(非)관세장벽이라고 부른다.

광의의 개념으로 보면 비관세장벽은 관세 외의 모든 수입장벽을 의미하지만 협의의 개념으로 비관세장벽의 범위는 수량 제한이나 정부 조달에서의 제한과 같은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될 수 있는 수입장벽을 지칭하며, 반덤핑 조치와 같은 제한조치는 무역구제조치로서 별도로 취급된다.

좁게 해석했을 때 비관세장벽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위생검역 조치와 기술장벽 조치인데 처음에 든 사례 중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가 위생검역 조치이고, 화평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기술장벽 조치에 해당된다.

WTO 협정에서는 보통 SPS 협정이라고 부르는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에서 위생검역 문제를 다루고, TBT 협정이라고 부르는 무역에 관한 기술장벽 협정이 기술 분야의 수입장벽을 다룬다.

FTA에서도 SPS 분야와 TBT 분야를 다루는데 이들 분야도 FTA는 제한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SPS나 TBT는 GATT의 예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즉 GATT 20조에서 ‘인간·동물·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설사 다른 GATT 조항상의 의무 위반이라 하더라도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 20조를 좀 더 상세하게 다룬 것이 바로 SPS협정, TBT협정이다.

그렇다 보니 FTA에서는 대부분 SPS협정, TBT협정상의 권리와 의무를 재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미 FTA와 한․EU FTA에서는 상당 부분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먼저 한·미 FTA의 경우 자동차 분야에 대해 별도의 작업반을 구성하고, 자동차 관련 기술규정이나 표준 문제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한·EU FTA에서는 양측이 관심을 갖고 논의할 수 있는 분야가 자동차 외에 전자, 의약품 및 의료기기, 화학물질까지 넓어졌다.

또 비관세조치와 관련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분쟁 해결 절차를 두고 있는데 이는 중개를 통해 보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비관세장벽 관련 내용은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중국과의 FTA 협상에도 도입해볼 만하다.

물론 협상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논의가 될지 최종적으로 도입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기업이 활용 가능한 방법이 도출되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무역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비관세장벽협의회를 만들고, 협회 내에 사무국을 설치했다.

트레이드내비(www.tradenavi.or.kr) 안에 비관세장벽 메뉴를 추가해서 주요 국가별로 비관세장벽 현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고, 기업이 직접 비관세장벽을 접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코너를 통해 많은 기업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서두의 사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자면, 일본산 수산물 제한조치의 경우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50개 수산물에 대해서만 수입을 제한하던 것을 9월 6일부터 해당 현의 모든 수산물로 확대한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한 것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GATT 20조에 따라 우리 정부는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SPS협정 2.1조도 이러한 권리를 재확인하고 있다.

다만 이 협정 2.2조는 제한조치가 충분한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고 있는데 다시 5.7조를 보면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에도 잠정조치를 취하고 이후 정보를 수집해 제한조치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과학적 증거를 갖춘다면 수산물 수입을 제한하더라도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화평법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TBT 위원회를 통해 문제 제기가 되어 왔는데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하위 법령을 통해 TBT협정 등의 국제조약과 충돌하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앞으로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모쪼록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이 법의 취지가 지켜지는 방향으로 시행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