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중심 정책금융 개편안 추진...수은에 대외금융 일원화

중소․중견기업 대상 수출금융 타격 받을 수 있어...분리 운영 효율적


미국 출구전략, 일본 아베노믹스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을 위태롭게 만드는 변수가 생길 것으로 보여 무역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책금융 개편안이 현 추세대로 굳어지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수출금융 지원에 큰 차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가 전체의 수출 실적도 추락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업계의 우려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새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정책금융 개편안이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논란중인 2가지 개편안...무보 쪼개서 수은 밀어주기(?)

금융위 산하 정책금융역할재편 태스크포스(TF)는 현재 대외정책금융을 수출입은행으로 일원화하는 정책금융 개편안(1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의 해외금융지원 업무와 무역보험공사의 중장기 보험업무가 수출입은행으로 흡수돼 수은이 대외정책금융을 전담하게 된다. 무역보험공사는 단기보험 업무만을 하도록 축소된다.

대내정책금융은 신설될 정책금융협의회를 중심으로 그 관리 하에 놓인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에게 각각 맡겨진다.

선박금융공사 설립안은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위험성이 있어 검토단계에 머물고 있다.

최근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차기 개편안으로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재통합 방안(2안)이다. 이 안은 1안의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중소․중견기업 수출 금융 타격...통합은 ‘시대역행’

1안대로 진행되면 무보의 중소․중견기업 수출금융 지원이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섞인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은이 가져가는 ‘중장기 보험’은 무보의 핵심 업무로 보험료 수입의 62%(작년 기준 4689억 원)를 차지하며, 무보는 이 수입으로 사고율이 높은 중소․중견기업 위주의 단기보험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 보험’이 빠질 경우 무보의 단기보험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흑자 기조를 유지해 온 무보는 졸지에 부실기관으로 전락하고, 매년 4000~5000억 원을 지원받아야 이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처량한(?)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수은이 운영할 중장기 보험업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은은 국가 또는 차주 등의 신용도가 낮으면 일반적으로 지원을 거절해 왔다.

▲앙골라 해상원유설비(1.8억 달러, 국가 신용도 사유) ▲미얀마 가스전(9억 달러, 국가 신용도 사유) ▲기아차 조지아공장 설립(4.5억 달러, 기아차 영업안정성) 등이 대표적인 ‘거절’ 사업들이다.

수은의 이러한 지원 태도는 BIS(은행자기자본비율) 규제를 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수은 업무의 80%를 국내금융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수은이 중장기 보험을 취급할 경우 거래 회피로 인한 지원 축소는 당연한 수순으로 예견되고 있다. 수은의 권위적․보수적 운영에 따른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무보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총 496건(499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주처와의 협상, 위험감소 방안 마련 등의 구조 개선을 통해 성사시켰다. 수은이 거절한 이 프로젝트를 무보가 성사시켰던 것이다. 수은이 독점했다면, 499억 달러의 수출 실적은 묻혀버렸을 것이다.

개편안대로 중장기 보험업무를 수은이 맡게 되면, 수출 실적이 묻혀 버릴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따라서 이 개편안은 내수 중소기업을 수출기업으로 육성해 수출 저변을 확대하려는 현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안대로 진행되면, 수은의 BIS 비율은 7.6%로 급격히 떨어져 결국 7.1조원의 대규모 자금 수혈이 긴요한 처지가 된다. 3월 현재 수은의 BIS 비율은 10.53%였다.

2안 역시 ‘수출금융제도의 후퇴’라는 비판의 여지를 갖고 있다.

무보와 수은은 지난 1992년 수출금융제도 선진화를 명분으로 분리됐다. 하지만 근본 사유는 수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무역보험업무 운영에 있었다. 92년 당시 무역보험 지원실적은 1.8조원으로 전체 수출실적의 2.6%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분리후 무보는 202조원(작년 기준)으로 112배까지 끌어 올렸다.

무보와 수은의 재통합을 통해 수은 체제로 끌고 가려는 2안은 1992년으로 수출금융제도를 후퇴시켜 실적을 다운시키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수은․무보 분리 운영 ‘효율적’...수출 중시 후발공업국의 수출전략

수은은 무보와의 통합 명분으로 세계적 추세를 들고 있다. 즉 미국, 일본 등도 대외정책금융기관을 단일화해서 체계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한 기관(USEXIM)이 대외정책금융 업무(대출 30%, 보험 70%)를 하고 있으나, 국내 금융은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BIS 적용을 받지 않으며, 태생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국내금융에 80%를 할애해서 BIS 규제를 받는 수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본은 국제협력은행(JBIC)이 대외정책금융 업무를 하고 있으나 국내금융을 하지 않아 BIS 규제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일본무역보험(NEXI)이 무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출형 ECA(Export Credit agency, 공적 수출 신용기관)와 보험형 ECA를 구분해 운영중인 국가는 일본 외에 중국, 독일, 헝가리, 체코,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다. 미국은 대출형 ECA만,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보험형 ECA만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중국, 일본, 독일 등 수출을 중시하는 후발 공업국들은 일반적으로 2개 기관을 통해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무보와 수은이 분리․운영돼야 하는 이유로 ‘정책 조합’을 통한 수출 여건 보완을 꼽고 있다. 즉 민간유동성이 풍부할 경우 무보가 상업은행 대출로 수출자금을 공급하고, 민간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수은이 해외 차입을 통해 수출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재정효율 측면에서도 분리 운영이 낫다는 지적이다.

즉 무보가 중장기 보험 업무를 맡을 경우 자본금 대비 50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반면 수은은 BIS규제에 묶여 같은 자본금 대비 10배의 성과 밖에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 개편이 2안대로 추진될 경우 수은의 BIS 규제 문제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수출금융제도의 후퇴라는 꼬리표는 떼어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개편안 왜 나왔나...금융당국, 이해관계 버려야

수은 중심의 이번 개편안들은 국책은행으로서 ‘존립 위기감’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국가적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수은은 최근까지 국내금융 위주로 경영을 해왔고, 이 때문에 국책은행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이 와중에 조선, 해운, 건설부분에서 부실채권이 쌓이다 보니 막대한 자본금 출자 없이는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게 됐다. STX관련 부실대출 추정금액만으로도 약 1조6000억 원에 달한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수은은 그동안 유보됐던 IFRS(국제회계기준)을 올해부터 적용받게 됐다. 그동안 위험자산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들이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자기자본비율이 더 낮아질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BIS 비율이 저축은행 수준인 한 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경우 수은의 기본 업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은은 현재 해외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데, 발행이 안되거나 조달금리가 급등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국내 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르게 돼 국내 기업들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수은이 국책은행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은 국가 신용도와도 연관돼 국가적 이미지에 먹칠을 할 가능성이 높고, 더 큰 피해로 연결될 개연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논의 중인 개편안들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무보를 쪼개서 그 핵심사업을 기획재정부 산하의 수은으로 가져 오고, 업무 중복 논란이 잦던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을 존치시킴으로써 금융당국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겠다는 게 요지로 볼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들은 수은의 경영상 과실을 개편안을 통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겠다는 의도까지도 엿볼 수 있다”면서 “개편 논의 중에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지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무보를 희생시키는 개편안은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금융당국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