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한국에서도 처리가 임박한 것과 관련, 이를 예의 주시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경제가 6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엔고로 인한 수출 타격 △뒤처지는 FTA △경쟁국보다 엄격한 노동규제 △40%를 넘는 법인세율 △대지진으로 인한 전력 부족 △엄격해지는 이산화탄소 규제 등 6가지 어려움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일본 경제는 ‘7중고’를 맞게 될 것이란 신음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동차, 전자기기 등 일본의 대부분의 주력산업이 한국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타격은 일본 자동차 산업이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에서 한국과 첨예하게 경쟁하는 일본은 한국이 유럽연합(EU)과 인도에 이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까지 FTA로 선점함에 따라 큰 피해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한국과 FTA 혹은 경제연계협정(EPA) 발효에 합의한 국가의 자동차 시장이 3510만 대로, 일본의 570만 대와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FTA 등으로 자동차 산업에서 관세가 철폐되면 승용차, 트럭, 부품 등에서 가격차가 나타나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한층 뒤쳐질 것이란 걱정입니다.

여기에다 일본의 완성차 메이커들은 엔고와 전력부족 등을 계기로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데, 한-미 FTA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요타만 해도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 수출용 캠리를 관세가 없는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산업 공동화가 진행돼 일본 경제의 체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이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FTA 대신 환태평양동반자경제협정(TPP)을 통해 기울어가는 시세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의 전체 무역액 중 FTA를 체결한 국가와의 거래비중이 각각 35.6%(미국 포함)와 17.6%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TPP가 체결되면 이를 36.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TPP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무역부문 최대 현안인 한-미 FTA가 국회를 통과한 만큼 앞으로는 TPP 교섭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양국 간 FTA 교섭에만도 수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TPP에 참가하는 나라가 미국, 호주, 일본,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9개국이나 돼 이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합의를 단기간에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