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파운드화를 기반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은 1차 세계대전으로 재정이 취약해지자 무리하게 금본위제로 복귀했다. 강한 파운드를 위한 것이었고 이는 파운드화의 고평가를 의미했다. 영국의 산업경쟁력은 약화됐고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경제가 더욱 나빠졌다.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파운드의 가치는 30%나 떨어졌다. 영국 경제는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막대한 파운드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특히 파운드를 철석 같이 믿고 있던 스웨덴, 벨기에 등의 타격이 컸다. 결국 파운드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재정난으로 엄청난 정부 부채를 안고 있는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다시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파운드화와 영국의 몰락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미국이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기로 한데 이어 조만간 3차 양적완화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달러의 향배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지난 주 공개한 8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3차 양적 완화 등 추가 경기부양책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20~21일 열리는 정례 FOMC의 결정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의사록을 인용, 경기부양을 위해 과감하고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일부 위원의 의견에 따라 국채 추가 매입을 통한 3차 양적완화 등 비상 수단이 폭넓게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보다 다가올 경기후퇴에 대한 위험을 사전에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3차 양적완화 실시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추가 부양책을 실시하면 경제성장과 고용 등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물가상승만 유발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에 따라 연준은 이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9월 회의에서 추가 경기부양책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만일 이번 달 FOMC에서 3차 양적완화가 단행된다면 이는 곧 달러화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미국이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기로 한 상태에서 3차 양적완화가 단행되면 넘치는 달러는 고금리를 찾아 아시아 등 신흥국으로 몰려들 것이고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가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미국은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통한 제조업의 부활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현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S&P로부터 신용등급을 강등 당한 미국 정부의 재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최근 10년간 국가부채가 8조5000억 달러 늘어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14조3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재정 악화는 중앙은행이 달러를 찍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마구 찍어낸 달러로 인해 달러 가치 하락이 이어지고 금값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추가 양적완하를 단행할 경우 자칫, 달러가 파운드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달러의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올지 모른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화 하락에 따른 자국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달러를 내다팔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그 때다.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대비를 마련할 때가 됐다. 당장은 인플레이션을 저지할 수 있는 대책 등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 보유외환의 다변화와 함께 경제혼란을 막을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수출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달러 가치 하락(원화가치 상승) 또는 급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가절감과 기술개발 등 국제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