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재정난…단가 낮춰도 수요감소
당국 “1조달러에 290억달러 흑자 거뜬”
  
탄탄대로를 달려온 한국 수출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대외 무역 환경이 급격히 변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앞날에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때문이다.

지난 7월의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액인 506억 달러의 수출에 힘입어 63억 달러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8월의 수출액은 464억 달러, 수입 456 달러를 기록하면서 흑자폭은 7월의 8분의 1수준에 그치는 8억 달러를 나타냈다.

8월 수출 부진이 계절적 요인에 따른 연례적인 모습이라 해도 자칫 적자를 기록할 뻔한 초라한 실적이다. 만약 무역수지가 적자로 나타났다면 18개월간 이어져 온 흑자행진이 마감되면서 파장 또한 적지 않을 상황이었다.

사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8월 무역 수지는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막판에 드릴십 2대를 14억 달러에 수출하면서 극적으로 흑자 반전했다.
이처럼 지난달 무역수지가 적자를 간신히 면한 마당이라 9월부터 본래 페이스로 회복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들은 8월 수출실적이 저조한 것은 올해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식경제부 안병화 수출입과장은 “8월은 비수기인데다 휴가철이 겹치면서 물량이 7월에 조기 선적하는 계절적 요인이 늘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시기가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EU의 재정위기로 경제가 많이 위축됐기 때문에 수출이 한동안 좋아지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LG경제 연구원 윤상화 책임연구원은 “상반기 수출이 호조를 이룬 것은 경쟁국들의 통화 동반 절상과 대지진 여파로 일본의 생산 공백에서 비롯된 바가 큰데 일본이 지진 충격에서 벗어나 산업이 정상화되면서 한국의 수출은 설자리가 더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침체가 우려되는 것은 그동안 지속돼온 수치가 크게 꺾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의 ‘8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7월에 크게 위축됐던 미국(2.5%), (EU-15.3%)의 수출 증가율이 완전히 감소세(미국, -5.9%,EU, -7.0%)로 돌아섰다. 미국과 EU은 지난해 한국이 중국 다음으로 수출을 많이 한 지역이다.

8월 무역수지가 선방한 것은 일본(30.9%) 아세안(26.9%) 중국(16.5%) 등 신흥국들로의 수출 증가율 덕분이다.
품목별로는 석유제품 84.5%, 선박 77.5%, 석유화학 34.0%, 자동차 32.5%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동안 호황을 누려왔던 ‘차화정’(자동차 ? 화학 ? 정유)은 하반기에도 견조한 수출 증가가 예상되지만 IT업종은 우려 섞인 전망이 많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D램 반도체(-14.1%)와 LCD(-21.5%) 등이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심하다간 월간 무역수지 적자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올초 무역 1조 달러를 목표로 세우고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면서 흑자 목표를 도중에 상향 수정해 290달러로 잡았다.

목표 달성이 순항하는 듯 보이던 것이 중동사태, EU의 재정불안 그리고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암초를 만나 험난한 항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업체들한테는 다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제품가격을 낮춰도 글로벌 시장에서 물량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LG경제 연구원 윤상화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EU의 경제가 워낙 위축되다 보니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낮춰서 들이대도 이들 나라가 구매할 여력이 많지 않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연초에 정부가 목표한 ‘수출입 1조 달러’ 달성은 가능하겠지만 잔치는 무역의날(11월30일)이후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