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가 발효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반응이다. 자동차와 몇몇 식품 · 와인을 제외하면 소비자가 실제로 얻는 가격혜택이 예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산 소형 가전브랜드는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서 8%의 가격인하 효과를 얻게 됐는데 실제로는 OEM방식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대부분이어서 FTA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유럽의 대표적 가전메이커 필립스의 경우 조명기구 · 주방용품 · AV제품 등 대부분이 무늬만 필립스 브랜드일 뿐 중국에서 생산된다. 프랑스의 테팔, 독일의 ‘밀레’ ‘휘슬러’는 원가가 관세철폐 부분만큼 올랐기 때문에 현재 판매하고 있는 선에서 가격을 유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회사는 관세 8%가 즉시 철폐됐지만 원자재값 인상을 이유로 오히려 가격을 올린다는 입장이다.

유럽산 명품을 보면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명품 의류 · 가죽제품의 관세가 8~13%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그러나 루이비통 · 샤넬 · 구치 · 에르메스 등은 지금까지 FTA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 메이커는 이른바 명품이 너무나 대중화돼서 이미지 하락을 걱정한 나머지 고가정책으로 품격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너도나도 소유하면 격조가 떨어지므로 수요층을 조절해 아무나 갖지 못하는 ‘명품’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곧 가격인상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이 미리 가격을 올렸고 프라다와 미우미우도 하반기 국내 판매가격을 인상하겠다고 공공연하게 흘리고 있다.

의류역시 FTA 덕분에 8~13%가 인하된다. 그러나 섬유 원자재가격 인상으로 이미 8~10%가량이 올라버렸기 때문에 FTA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자동차와 삼겹살 · 와인의 경우 그나마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아우디코리아는 이달부터 FTA가 발효됨에 따라 국내 판매 차량 가격을 모델에 따라 50~ 370만원을 내린다고 밝혔다.

삼겹살은 FTA 발효에 맞춰 네덜란드산 냉장육이 롯데마트 이마트 등에서 100g당 115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는 국내산보다 절반이상 저렴하다.
와인은 최대 10%가 인하돼 프랑스산 무통 카데 레드와인이 36,000원에서 32,400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EU FTA는 발효와 함께 관세가 모두 즉시 철폐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소비자들도 있지만, 일부 소비재 품목에서 자유무역 협정으로 큰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국내 소비자들은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예상과 달라 혼란스럽다는 표정이다.
OEM방식, 원자재값 인상, 명품이미지 회복전략 등의 구실이 한-EU FTA 초반부터 빛을 바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