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힘입어 최근 중국 중서부 내륙 지역이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내륙지역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은 내륙의 인건비가 무조건 연해보다 싸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내륙을 고임금 시대의 피난처로 보고 진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2010년 기준 상하이의 생산직 임금은 월 평균 300달러로 자카르타, 하노이 등 동남아 대표도시 수준을 월등히 넘어섰으며, 지금의 상승 속도대로라면 2015년에 그 격차가 3배 이상으로 벌어질 전망이다.
중국 연해지역의 경영환경 악화가 중국 경제발전 단계에 따른 필연적인 추세인 만큼 그 대안이 될 수도 있는 내륙시장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중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LG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달리 봐야 할 중국의 내륙시장?을 통해 생산지 관점과 시장 관점에서 흔히 ‘상식’으로 생각하는 중국내륙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펴봤다.
한국기업의 중국 내륙에 대한 고정관념
▶저렴한 인건비가 진출의 가장 큰 메리트다? = 임금수준이 생산지 선정의 결정적 요인인 만큼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내륙을 고임금 시대의 도피처로 간주하는 기업들이 많다. 2010년 충칭의 평균임금은 베이징의 53.8%, 중서부 9개 성시의 평균임금은 연해지역 3개 직할시인 베이징, 상하이, 텐진의 51.3%밖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비교 대상의 적합성에 있다. 중국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연해 직할시의 경우 내륙지역은 물론 대부분 연해 성시의 임금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제조업 생산기지로서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3개 직할시를 제외한 다른 연해지역으로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서부지역의 임금수준은 연해지역의 92.0%로 그 차이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서부에 진출한 많은 외자기업들은 임금수준이 낮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해지역보다 높은 임금상승 속도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저임금의 변화추세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연해 대도시의 임금 견인효과가 내륙으로 파급되면서 내륙기업들의 어깨도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노동생산성이다. 명목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생산성 증가세가 이를 상회한다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위노동비용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내륙지역의 경우 노동 생산성 증가율보다 임금 상승세가 더욱 두드러져 단위노동비용은 오히려 연해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2007년 이후 연해지역보다 다소 하회했지만 상승세는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내지로 몰리는 이유는 대부분 단순한 비용절감 효과보다는 내지시장 개척, 연해지역 리스크 회피 등 다목적 포석을 염두에 두고 있다. 고객사인 HP, Dell 등이 청두에서 공장을 설립하자 이들과 동반진출을 결정한 인텔의 전략을 내지고객 대응형이라고 한다면 에어컨 공장을 광둥성에서 내륙 물류 중심지인 우한으로 이전한 TCL은 2,3선 도시에서 급증하고 있는 에어컨 수요, 즉 내륙 소비시장의 잠재력에 착안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낮은 구매력은 시장으로써 활용가치가 낮다? = 내륙이라고 하면 아직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낙후지역이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륙에서도 지역간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착시현상이 생기기 쉽다. 중서부 평균소득 수준은 연해지역과 격차가 있으나 지방정부의 지원이 집중되는 성도의 경우 대부분 전체 성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양호한 시장여건을 가지고 있다.
2009년 내륙 9개 성시의 1인당 GDP와 1인당 소비액이 연해 11개 성시의 수준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지만 내륙 9개 거점도시는 대부분 연해평균 수준을 추월했다. 특히 1인당 GDP의 경우 내륙거점도시의 평균치가 이미 2005년의 베이징 수준에 근접했고 전국평균의 1.7배에 이르렀다. 성장세도 연해지역을 넘어서고 있어 향후 연해도시와의 격차가 갈수록 좁혀질 것이다.
최근 지역균형 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고속철도와 도로망이 구축되면서 거점도시들이 주변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 수천만 명의 소비자를 거느린 거대한 상권으로 형성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도 내륙지역의 소비확대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외자기업들의 중국 연해시장 진출은 대략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국제대도시인 베이징, 상하이는 그 당시만 해도 현재의 내륙 거점도시처럼 온갖 불확실성이 도처에 깔려 있는 ‘미숙아 시장’이었다. 그 당시의 중국정부는 연해지역 발전을 최우선으로 했으나 지금은 내륙개발을 강조하면서 내수중심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물류여건이 매우 열악하고 산업 클러스터가 전무하다? = 기업들이 내륙 투자를 꺼리는 이유 1순위가 바로 ‘물류여건’일 것이다. 그러나 사업특성에 따라 지역적 이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물류운송이 가능할 수 있다. 2010년 충칭시가 마련한 ‘철도-수로 국제 대통로’로 인해 유럽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27일로 상하이에서 해운으로 직접 가는 것보다 평균 2~3일 빠르다.
올해 4월부터 신장성을 경유해 러시아, 폴란드, 독일 등을 연결하는 국제철도가 개통된 후 유럽까지의 시간은 12일로 더욱 단축됐다. 최근 중국정부가 중서부 내륙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복합운송 네트워크 구축을 가속화함에 따라 수출대상국이 동남아, 유럽 등지라면 연해보다 내륙 운송이 더 비교우위가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중국 내륙의 물류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교통운송 인프라 확충이 서부대개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거의 모든 내륙지방의 발전계획에서 중점 추진 과제로 올라와 있다. 매년 수천km의 철도와 도로고 새로 개통되고 있고, 2012년 이후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고속철도망이 점차 완공됨에 따라 전국 어디든 베이징, 상하이까지 8시간 내 도달하게 된다. 2020년까지 한국 철도 총영장거리의 10배와 맞먹는 4만km의 철도를 신설한다는 계획이 현실화되면 중서부 물류환경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한편, 내륙의 산업클러스터가 전반적으로 연해보다 취약하지만 각 지역마다 전통적 비교우위 산업분야가 있고, 오래전부터 산업클러스터가 잘 형성돼 있는 특화분야도 적지 않다. 후베이성 우한의 철강, 쓰촨의 전자산업, 충칭시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이에 해당된다. 중국정부도 지역발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내륙지역의 첨단산업 클러스터 육성에 매우 적극적이다. 중국 진출 시 해당지역의 중점산업 및 산업체인 발전상황을 확인하고, 대기업의 경우 원자재 비용절감 및 정부지원 확보에 유리한 산업체인 전체의 이전 방안을 검토해볼 수도 있다.
▶연해지역보다 소비성향이 낮고 자국 브랜드를 선호한다? = 많은 기업들이 보수적인 중국 내륙 소비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륙 = 낮은 소비성향’이라는 공식이 중서부 거점도시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내륙 거점도시의 소비성향이 높은 이유는 먼저 역사문화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꼽을 수 있다. 중부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 정치, 경제의 중심이자 중화문화의 발상지였다. ‘천부지국’이라고 불리는 쓰촨성도 한나라때부터 서남지역 최대의 상업중심지이며 ‘남부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은 풍요로운 곳이다. 내륙소비자라고 해서 외자제품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로컬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백색가전 및 일반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로컬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지만 외자기업의 주 타깃 고객인 중산층들은 외국계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가격대비 성능이 괜찮고 실용적인 로컬제품도 많지만 글로벌 브랜드와 비교하면 아직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이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특히 내륙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외국계 브랜드는 높은 품질을 보장해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품위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사회신분을 대변하는 ‘무형 가치’를 크게 제공한다. 실제로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전제로 내륙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가져가는 게 많은 외자업체의 선택이다. 내륙 도시에서 아직도 한류에 대해 호감도가 높다는 점도 활용할 만하다.
‘평균’만 보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의 경제구조 전환은 지속가능성장을 도모하는 중국으로서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동안 연해지역에 편중된 대외 의존형 경제발전 전략으로 내외 불균형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가 초래됐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외부충격이 더해지면서 내수확대를 통한 새로운 성장기반 마련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러한 내수중심의 성장방식 전환은 중국의 지역균형발전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위기 이후 세계경기 침체의 영향을 적게 받은 내륙지역이 미래의 유망시장과 제2의 성장 축으로 부각되고. ‘중부굴기’ 등 내륙 발전 전략도 본격화되고 있다. 성장엔진 교체와 균형발전이 중국정부의 장기적인 정책방향인 만큼 중국 진출기업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연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우려가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시장 외연확대와 내륙경제 급성장에 따라 수많은 새로운 기회도 생겨날 것이다.
연해지역 성장 동력이 내륙으로 파급되고 있지만 내륙은 발전모델에 있어 연해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해가 경제특구를 시작으로 확장된 것과 달리 내륙은 ‘성도의 견인효과’가 강조되면서 기반이 양호한 주변 도시를 한데 묶은 도시군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또한 내륙지역은 내수용 투자재 및 소비재를 성장엔진으로 삼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연해지역의 사업이전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내륙시장의 이러한 특징을 잘 파악하고 중국 구조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초의 연해지역처럼 현재의 내륙은 외자투자를 환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특히 투자규모가 크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의 경우 파격적인 지원책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현 지점에서는 저렴한 인건비와 내륙지역의 세금혜택 등 변동성이 높은 단기요인만 보고 생산지 확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 보다는 지역의 시장 잠재력, 산업 육성 계획, 향후 물류환경 변화 추세 등을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검토하는 것이 환경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또한 내륙지역에서도 발전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에 ‘평균’만 보고 판단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