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분석] 고환율 시대 끝났나
  
당분간 달러당 1080원 지지선 전망
조정 거친 후 하락기조 지속될 듯
 
 
지난 주 달러당 1100원이 붕괴되면서 원-달러 환율 하락이 본격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물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잠정적으로나마 환율 하락을 용인하고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수출업계의 환율 불안은 커지고 있다.
 
<>2년 7개월만에 달러당 1100원 붕괴 = 원-달러 환율은 일본의 대지진 이후 본격적인 하락세로 반전해 3월17일 1135원에서 4월 4일 1087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지난 2008년 9월8일 1081원 이후 2년 7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원-달러 환율 급락과 엔-달러 환율 상승이 맞물리면서 원-엔 환율도 하락세로 돌아서 2010년 5월 이후 10개월만에 100엔당 12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10일 100엔당 1348원에서 4월5일 1292원으로 한 달이 채 안되는 사이에 무려 56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이같은 환율 급락 원인으로는 우선 중동 및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빚어졌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약화됐고 이 때문에 달러화가 전반적인 약세를 기록한 데서 찾아진다.

또 국내 요인으로는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세로 반전해 달러화 수급이 넉넉해진 것이 꼽힌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고물가가 지속되자 정책 당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원화 강세를 용인하는 점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분석된다. 특히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0원대가 무너진 가운데 시장에서 정부가 강달러 정책을 포기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막대하게 풀린 엔화 유동성과 G7의 외환시장 공동개입 등에 힘입어 엔캐리 트레이드가 부분적으로 재개되면서 엔화도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당분간 환율 조정 후 하락기조 지속 = 수출업계의 관심은 환율의 하락 '폭'과 '속도', 그리고 '변동성'이다. 언제 쯤 얼마까지 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단기적인 등락이 얼마나 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일단 1080원선이 단기 지지선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국내 증시 강세로 외국인 순매수 강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단기적인 하락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또 국제 금융시장의 안전자산 선호심리 약화도 환율을 아래쪽으로 밀어내리는 요인이다.

그러나 정부가 물가를 낮추기 위해 어느 정도 환율 하락을 용인하고 있지만 수출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급락에는 제동을 걸 수 밖에 없어 하락 폭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장기간 조정 국면을 거친 이후 레벨다운했다"며 "1080~1090원대에서 일정 기간 조정을 이어간 후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내 달러당 1020원까지 하락 전망 = 먼저 국내 주요 연구소들은 이달 들어 환율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7일 내놓은 '환율 1100원 붕괴의 배경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올해 연평균 1060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이 연구소가 지난해 말 전망한 올 평균 예상환율 1080원보다 20원 낮은 것이다.

이 연구소의 정영식 연구원은 "향후 외환시장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원화 강세 요인이 우세하다"며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으로는 1060원, 연중으로는 1020원 선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원-엔 환율은 100엔당 연평균 1230원대, 연중 1100원 대 중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도 하루 앞선 6일 '2011 경제성장률 수정전망 보고서'를 내고 원-달러 환율이 상반기에는 1095원, 하반기에는 1045원 선에서 형성될 것이라며 연평균 1070원을 제시했다. 또 원-엔 환율은 상반기 100엔당 1310원, 하반기 1160원으로 연평균 1235원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한국경제신문이 7일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 및 금융회사 대표 이코노미스트 20명을 대상으로 한 '4월 경제전망 설문조사'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6월 말 1070원,연말에는 30원가량 더 떨어진 1040원으로 각각 예상됐다.

이런 가운데 올들어서도 단기 등락폭이 여전히 커 수출입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올들어 4월8일까지 매매기준율 기준으로 환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2월24일의 달러당 1135원이었고 가장 낮았던 때는 4월6일의 1086원이었다. 불과 40여일 사이에 49원이나 떨어졌다. 2월1일 달러당 1117원에서 설 연휴가 지난 첫 거래일에 1106원으로 11원이 떨어진 것을 비롯해 하루 사이에 10원 이상의 변동폭을 보인 적도 여러번 있었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금리인상 기대감, 국내 자본유출입 규제 시행 등으로 원화가 일시적으로 약세로 반전하는 등 높은 변동성을 보일 가능성도 지적하고 있다.
 
<>무역업계의 고민과 시름 = 당장 수출업계는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의류 수출 대기업인 S상역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갑작스러운 감이 있으며 하락 속도도 예상보다 빨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수출업계는 달러당 1082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수출할수록 손해를 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말 무역업체 880여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수출기업들이 보는 적정환율은 1151원, 손익분기점 환율은 1082원, 사업계획 환율은 1122원이었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향후 환율 하락이 지속될 경우 '손해보는 수출'이나 '수출 포기' 사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다행이 환율 하락으로 수입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타격이 줄어들겠지만, 국내에서 원재료를 조달하고 완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시대는 갔다"며 "기업들이 향후 저환율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원은 "그동안 원화의 저평가 상태에서 원화 강세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환율이 수출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고 전제하고 "2005～2007년 저환율 시기에 기업의 대응사례를 참조하고, 같은 시기 엔저로 인한 일본기업의 느슨한 대응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