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해외이전에 따른 공동화로 일본 산업소재 시장이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실적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국내가격 형성시스템이 무너지고 선물시장 등에 연동한 국제가격이 일본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소재 조달도 아시아 각지로 확대됨에 따라 국내 거래구조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수요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 일본 산업계가 없을 정도다”라는 미쓰비시화학의 고순도 텔레프탈산(PTA) 담당자의 말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 회사는 대표적인 폴리에스테르 원료인 PTA의 국내생산을 연내에 종료할 예정이다. 대신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의 생산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합성섬유와 의료품 사업을 전개하는 테이진도 내년 3월을 목표로 반세기 동안 성장을 지탱해 온 폴리에스테르 장섬유의 국내생산을 중단하고 태국으로 옮기기로 했다. 최근 엔화 강세와 아시아 시장 확대로 인한 공동화 물결이 국내 장비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내 생산 및 거래의 이 같은 축소는 원자재 가격의 형성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오랜 관행이던 국내 기업 간 교섭에 따른 독자적인 가격체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그 상징이 PTA 거래가격이다. 일본 내 PTA 가격이 거래량이 확대되는 중국의 상품 거래소에서 정해지는 선물가격을 반영하도록 변한 것.

이에 따라 심하게 변동하는 아시아의 새로운 가격 시스템이 일본 기업의 소재 소싱과 판매전략을 뒤흔들고 있다. PTA를 원료로 사용하는 도레이의 부사장은 “투자자금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런 조짐은 일본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사카의 히가시 오사카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중소기업 집적지다. 그런데 1990년까지 약 1만 개이었던 오사카시의 공장은 산업 공동화와 폐업이 맞물리면서 지금은 약 5500개로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 오사카시의 못 메이커인 일본제선 대표는 “20개 이상이던 못 메이커가 3개로 줄어들었다”면서 위기감을 나타냈다. 해외진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국내시장에서 퇴장을 재촉받는 상황이다.

가격협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 금속·플라스틱 업계는 엔고로 가격이 저렴해진 한국과 중국 등 경쟁국 가격을 제시받고 있다. 너트 제조 대기업인 후세라시 사장은 “일본 중소기업들이 가격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저렴한 아시아로 거래처를 변경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금속 전문상사인 나카야마금속은 비용을 한층 더 절감하기 위해 핵심소재도 현지에서 생산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반면 고품질 강재 등 해외에서 생산할 수 없는 소재는 10~20% 가격이 높아도 일본에서 생산해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오사카 KBC 측은 “일본 산업소재 분야가 국내산업 공동화에 따른 생산거점 해외이전과 국내 메이커로부터의 가격인하 압력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