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유럽연합(EU) 의회는 역외 수입제품에 대해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이탈리아가 2003년 역외국 수입제품에 대한 원산지 표기 의무화 도입을 처음으로 제안한 이후 줄기차게 노력해온 결과다.

이탈리아가 원산지 표기에 열 올리는 것은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걸핏하면 대립해온 여·야 의원들조차 이 법안 통과를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보였을 정도다. 그간 이탈리아가 목을 매다시피 해온 EU의 원산지 표기에 대해 밀라노 KBC가 자세한 내용을 알려왔다.
 
□ 원산지 표기, 왜 중요한가? = EU의 원산지 표기제도는 임의사항으로 각 회원국 법률에 따라 표시의무 여부가 달리 시행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앞으로 EU에 수출되는 섬유, 패션, 가죽, 신발, 핸드백, 가방, 여행용품, 자동차 실내용품, 가구, 보석, 나사·볼트류, 공구류, 빗자루 및 브러쉬류, 세라믹류, 수도꼭지류, 타이어, 유리, 고무 튜브, 칼 등 날붙이류 등 특정 제품들은 원산지 표기가 의무화된다.

특히 이탈리아는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편으로 기업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해외 아웃소싱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자국 산업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로 경제불황에 더해 내년 7월 발효 예정인 한-EU 자유무역협정(FTA)까지 겹치면서 이탈리아산 제품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이미 강력한 원산지 표기 법안을 채택해 자국산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보호하는 한편 신흥국으로 이전하려는 산업을 묶어두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섬유, 패션, 가구, 공구 등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주력산업 가운데 최근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으로 활력을 상실하는 산업들이 원산지 표기 강화정책의 대표적 수혜산업으로 손꼽힌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는 공정의 대부분을 중국, 인도 등 저임금 신흥국에서 마친 뒤 극히 일부분만 자국 내에서 제조한 제품도 ‘메이드 인 이태리’ 레이블을 붙였던 제도적 허점을 보완, 공정 중 최소 2단계 이상을 국내에서 완성해야 자국산으로 인정받도록 법률을 개정한 바 있다.

□ 원산지 표기 의무, 어떤 품목이 영향받나? = 이번에 채택 예정인 원산지 표기 법안은 발효시점으로부터 5년간 유효할 예정이며 EU 역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다양한 품목을 망라하고 있다. 원산지 표기 법안의 규제대상이 최종 소비재로 국한되는 대신 섬유부터 타이어, 공구류에 이르기까지 규제품목은 당초 예상보다 더욱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는 원산지 표기 의무법안이 2011년부터 발효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